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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등산전투

sky viento 2022. 8. 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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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등산전투

백등산 전투는 동북아에서 유목제국의 시대를 열고 유목사의 흐름으로부터 실로 기념비적인 전기를 마련한 전투 초한쟁패를 승리로 이끈 유방은 중국의 지배자로서 군림했지만, 한 왕의 반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흉노의 묵동성우와의 대결에 끌려 그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그 후, 흉노는 향후 80년간 연간 한과의 관계로 우위를 차지했고, 한은 권토중래를 꿈꾸며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기원전 200년 현재 산서성 대동 부근의 헤이조 부근 백등산에서 열린 전한과 장노의 대전투다. 문헌상, 양측의 병력이 합해 72만으로 불리지만, 중국 역사서 특유의 과장을 고려하면, 상당한 전력이 서로 대항해, 흉노의 완승으로 끝났다. 전투의 발단 자체는 강성이 된 흉노의 견제 겸 흉노의 선수가 되어 버린 한왕신을 정복하려고 하는 유방의 원정이었지만, 이에 흉노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양측 의 전쟁으로 발전했다.

동북아에서 유목제국의 시대를 개방해 유목사의 흐름에서는 실로 기념비적인 대사건인 동시에 초승계쟁 이후 유일무이의 전 중국 통일제국으로 자리매김한 전한(서한) 로는 개국 초기부터 입게 된 최악의 시련이었다. 이후 수백 수천년 동안 이어진 한제국과 흉노, 중화제국과 북방유목제국이 펼친 대사투의 서막을 열게 된 전투다.

중국의 위키피디아나 여러가지 책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백등지역(白登之圍) 또는 백등피규(德登被圍)라고도 불린다. 「백등산에서의 포위」 정도의 의미인데 영어 위키 백과에서는 Battle of Baideng로서 백등 전투라고 하는 일반적인 전투로 작성되고 있어, 마찬가지로 백등지로라고 표기하면서 일반적인 전투를 칭할 때 에 사용되는 「지전」(노야)이라는 표현을 함께 쓰고 있다. 일본어의 경우, 백등산의 전투(백등산의 전투)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 밖에 헤이조노부치, 즉 '헤이조의 치욕'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설에는 백등산의 전투가 산서성 안에서 북부의 전투이기 때문에 흉분이 아니라 고조선(동호)과의 전투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백등산 전투는 흉노와 한고조 유방의 전투가 아니라 고조선 동호와 한고조 유방이 싸운 전투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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